沈尙龍
尙龍187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오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신기리(新基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7세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오수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목격한 이기송(李起松)은 임실군으로 돌아와 뜻을 같이하는 마을 주민들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이기송의 권유를 받고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 동지 이기우(李起偶)·이윤의(李倫儀)·이주의(李柱儀)·이회열(李會烈)·오병용(吳秉鎔) 등과 함께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주민들에게 파리강화회의(巴璃講和會議)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독립만세를 부르자는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시위 주도자들은 오수시장을 돌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고, 시위 군중의 수는 약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다른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시위대의 기세를 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오수경찰관주재소 경관들이 만세시위 주도자 이기송을 붙잡아 경찰주재소로 끌고 갔다. 그러자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에 돌을 던지도록 직접 명령하여 유리창을 포함한 기물을 파손하고, 주재소로 들어가 이기송을 구출하였다. 그리고 시위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주재소 진입을 막으려고 한 순사보(巡査補) 고택기(高宅基)의 총을 빼앗고, 경찰주재소 종루(警鐘臺) 밑으로 끌어내어 마구 구타하였다. 이날 주재소를 파괴한 시위대는 둔남면사무소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고 둔남면장 이창의(李昌儀)와 면서기(面書記) 임상학(林相學)에게 만세를 부르라고 하였다. 또한 둔남면 일대의 일본인 가옥과 상점을 파괴하였다. 만세시위가 격렬해진 오후 4시, 남원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의 군경이 출동해 총을 발포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는데, 이때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조사를 받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