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빈
申泰彬1879. 2. 11 ~ 1943. 3.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9년 2월 11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현 당진군)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에서 시작되어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장터로 이어진 만세시위와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 집에 한 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구장으로부터 도로 보수에 대한 연락을 받고, 예정된 4월 4일 아침 다른 주민들과 함께 연장를 지참하고 대호지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이때 모인 인원은 600여 명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인정을 비롯한 독립운동추진위원회의 주요 인물들은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며 실제 목적은 만세운동임을 밝히고,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부터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만세시위대가 천의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천의장터가 속한 정미면의 주민까지 결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더욱 사기가 올라 많은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천의장터의 만세시위는 오후 4시 경까지 진행되었다. 그 이후 뒤늦게 만세운동 진압을 위해 당진경찰서 소속의 순사들이 지원 나왔는데, 이들과 일부 시위 참여자들 사이에 대형 태극기의 압수 문제로 대치국면이 조성된 상황에서 당황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시위 참여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시위는 자진 해산하여 귀가했으나, 그 직후 일제의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검거에 나섬에 따라 붙잡혔다. 서산경찰서로부터 만세운동의 적극 가담자로 분류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1919년 4월 22일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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