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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복

申泰福

1882. 2. 8 ~ 193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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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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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2년 2월 8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죽림리(竹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금마면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이 동지로 결합하여 추진되었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4월 1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열리는 것을 이용하였다. 연극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하고 있던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오후 8시 경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30여 명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동참하면서 연극 공연은 곧바로 만세 시위로 전환되었다. 이 날의 만세시위는 출동한 일제 경찰에 해산되었으나, 체포자는 없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현장에서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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