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태
兪鎭台188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 · 와하케뇨지방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화도면(和道面) 차산리(車山里, 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유진태(兪鎭泰)이다.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삼촌이다. 1905년 4월 국제이민 브로커인 마이어스가 멕시코 유카탄주의 에네켄 농장주협회의 대리인으로 노동 이민자를 모집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그러나 멕시코 이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일본의 대륙식산합자회사와 손을 잡고 이민자를 모집하였다.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한인 1,033명과 함께 멕시코로 노동이민을 떠났다. 5월 11일 멕시코 유카탄주에 도착하여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살인적인 무더위와 노예 수준의 노동 조건 아래서 계약 기간인 4년 동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1909년 4월경 멕시코 거주 한인들이 비참한 현실이 북미 지역의 한인 동포사회에 알려지자 대한인국민회는 방사중(邦化重)과 황사용(黃思溶)을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로 파견하였다. 이들의 지원으로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설립되었고, 이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설립 당시 한인 314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의 단합과 독립운동 지원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이근영이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2월에는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 소식을 계기로 국욕기념식(國辱記念式)이 개최되었는데 이때 연설을 하였다. 1910년 말에는 멕시코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한인들이 생활고를 겪으면서 유카탄을 떠나기도 하였으나 멕시코에 활동을 이어나갔다. 1912년 1월에는 와하케뇨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를 조직하고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후부터는 광복이 될 때까지 메리다지방회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평의원으로 선정, 회장 서현우가 사임한 이후 1921년부터 1922년까지 회장을 역임하였다. 1923년에 법무, 1924년 서기 겸 재무, 1925년 재무의 책임을 맡았다. 1930년 경 한인 1세 지도급 인사인 이종오(李鍾旿)·박춘삼(朴春三)·김정식(金正植) 등과 함께 메리다시 65번가에 회관을 짓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멕시코 토지법에 의해 외국인인 한인이 건물이나 토지를 매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한인이 멕시코로 귀화하였고 8명이 공동명의로 토지를 구입하여 회관을 지었다. 1936년까지 다시 회장으로 역임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 3·1절 기념식, 이봉창(李奉昌) 추도회, 국치기념식, 순국선열기념식 등의 개최를 주관하였다. 1936년 7월에 대한인국민회로부터 로스앤젤레스총회관 건축 사무 진행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1937년부터 1944년까지 메리다지방회 주최 각종 기념식에서 연설하였으며 1945년에는 감찰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처럼 메리다지방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수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