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宗植
宗植1863. 10. 11 ~ 1935. 5.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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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63년 10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동(水谷洞, 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집안 내력 및 성장 과정은 확인할 수 없다. 1919년의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농업에 종사한 것으로 확인된다. 1919년 안동군 임동면 편항시장에서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7~18일 안동군 예안면과 안동읍에서 만세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었다는 소식이 임동면에도 전해졌다. 유동기(柳東耆)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와서 동네 일대에 전달하였으며, 수곡동의 사립협동학교(私立協同學校)에 다니던 유동태(柳東泰)·이균호(李均鎬)를 만나서 임동면 일대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한편 임북면(臨北面) 계곡동(桂谷洞, 현 예안면 계곡리)에 사는 유림이었던 유연성(柳淵成)은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현 중평리)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뜻을 같이 한 인사들에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관청을 파괴하자고 제안하였다. 아울러 중평동 편항시장의 동쪽에 있던 공동타작장에서 유동수(柳東洙) 등 7명을 비밀리에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해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편항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날 오후 2시 유연성은 군중들을 향해서 독립만세를 외쳐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였고, 그후 10여 명의 주도자들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이 와서 시위 주도자였던 유연성과 배대근(裵大根)을 연행하고자 했으나, 연행에 반발한 시위대와 함께 배대근과 일제 군경에게 몰려들었다. 일제 군경은 주재소 안으로 숨었으며, 이에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그때 주재소 뜰 안에는 이미 800여 명의 시위대가 자리해 있었다. 이때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서 권총 한 발을 쏘았다. 그러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일제 군경들에게 달려들어 대검과 권총, 그리고 주재소에 비치된 총·칼·탄환 등을 압수해서 파괴하거나 우물에 버렸으며, 일제 군경 1명을 상대로 집단 구타를 가하였다. 그리고 일제 군경의 사택을 습격해서 그 곳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향해서, 그 곳의 비품, 물품 등을 파괴하고 각종 장부 및 서류도 파기하였다. 그 후 시위대는 다음날 오전 3시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자진해서 해산하였다. 오전 5시에 임동면에 도착한 증원된 일제 군경은 시위 주도자 및 참여자를 색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연행되어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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