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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영

玉淳永

185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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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옥순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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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순천(順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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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순천면(順川面) 서변리(西邊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56년생으로 추정된다.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뒤 일본의 폭압적인 지배 현실을 개탄하면서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국적으로 진행된 1919년 만세운동을 겪으면서 독립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慈山面)에 거주하는 윤찬복(尹燦福)과 풍산군(豊山郡)에 거주하는 최복길(崔福吉)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총무인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에 힘을 합쳐 임시정부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1919년 (음)10월 11일경 윤찬복·최복길·정찬성(鄭燦成) 등은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 야소교 소속 여학교에서 비밀리에 모여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大韓國民會 婦人鄕村會)를 조직하고, 기독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회원을 모집하였다.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전도사인 윤찬복과 친분이 있어, 윤찬복으로부터 부인향촌회에 가입할 것을 권유 받았다. 평소 독립에 뜻을 지니고 있던 터라 윤찬복의 제의를 수락하고 부인향촌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에 보낼 의연금 모집을 위해 힘썼다. 부인향촌회는 각 회원으로부터 4원씩 징수하였다. 그 중 향촌부인회 운영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한 1원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모두 모아 총 160여원의 의연금을 임시정부 총무인 차경신(車敬信)에게 전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1921년 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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