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맥결
安麥結1901. 1. 2 ~ 1976. 1.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
- · 수양동우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901년 1월 2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동진면(東津面) 고일리(古逸里) 출신이다. 이명은 안맥길(安麥吉)이다. 도산 안창호(安昌浩)의 조카로 어린시절부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1919년 숭의여학교 재학 중 동료와 함께 일제의 ‘시정기념일’ 행사를 반대할 목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고 1925년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 회의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 수양동우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10월 1일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에 재학 중 동료인 한선부(韓善富) 등과 함께 일제의 ‘시정기념일(施政記念日)’에 반대하여 만세운동을 벌여 경찰에 붙잡혔고 구치소에 20일 동안 구금되었다. 시정기념일은 1910년 9월 20일 칙령 제354호 부칙에 따라 1910년 10월 1일을 기점으로 총독부 정치가 개시된 날을 휴일로 정한 날이었다. 1915년부터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반대를 했던 것이었다. 이후 1921년 숭의여학교 내에서 결백회(潔白會)와 특별기도단(特別祈禱團)을 조직해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 나카무라여고(東京中村女高, 현 나카무라가쿠엔 여고)로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1925년 1월 19일 안창호의 주도로 중국 상하이(上海)에 조직된 흥사단(興士團) 원동임시위원부(遠東臨時委員部)에 가입하여 제19반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월 28~29일 영어를 공부하고자 동명학원(東明學院)이 있던 난징(南京)에 머물다가 상하이에서 열린 흥사단 제11회 원동대회(遠東大會)에 주요한(朱耀翰) 등과 함께 참석하여 애국가를 부르고 강연회에 참가하였다. 1927년 1~2월 상하이를 거쳐 귀국했고 같은 해 3월 미국의 흥사단과 상하이의 흥사단 원동위원부(遠東委員部)의 진로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금까지의 실력양성주의를 지양하고, 혁명대당(革命大黨)으로 성격을 전환한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였다. 이후 1929년 11월 수양동우회는 국외의 흥사단과 통합되어 동우회로 개칭하여 성격 변화를 꾀하였으나 1932년 11월 안창호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동우회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 동우회에 계속 가입되어 활동을 지속하였다. 1927년 7월 1일 서울에서 유중학우구락부(留中學友俱樂部)를 발기하였고 같은 해 9월 1일 강서군 동진면의 탄포리교회(灘浦里敎會)에서 개최된 기독청년면려회(基督靑年勉勵會)의 강연회에서 「무너진 집을 다시 건설하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이후에 고향인 동진면 고일리에 있는 사립 점진학교(漸進學校)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1937년 ‘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강서경찰서에 붙잡혔다. 같은 해 11월 9일 서울 종로경찰서로 압송되려던 차에 당시 임신 중인 사정으로 조속히 교원 직을 사직하고 근신하겠다는 뜻을 밝혀 12월 21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1938년 2월 29일 점진학교 교사직을 사임하였다. 광복 이후 1952년 서울여자경찰서장이자 총경이 되었으며 1954년 치안국 보안과에 근무하여 보안과 여경계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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