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學官
學官1892. 12. 2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92년 12월 26일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횡천면(橫川面)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1897년에서 1906년까지 구학서재에서 한학을 배웠다. 1907년 평남 순천군(順川郡) 유동(柳洞)에서 김관수(金官洙)가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여 한때 맹산군(孟山郡)을 점령(占領)하였다가 이스라지 고개에서 일본군과의 접전에서 패하여 모두 흩어졌다. 이후 해산 군인 출신 출신인 윤동섭(尹東涉)이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활동하던 중 자신이 거주하던 곳을 지나가자 이에 동참하였다. 윤동섭 의병부대에서 소부대장의 책임을 맡아서 양덕, 맹산, 영흥, 문천, 고원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각처에 머물고 있던 포수들을 모집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애기대장’이라 불렸다. 이때 모집한 포수가 180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을 이끌고 윤동섭의 명령 하에 함남 고원읍에 있던 일본 수비대 및 헌병대를 습격하여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의병부대를 따라 황해 곡산 방면으로 진출하여 당시 선바우에 있던 일본 병참을 습격하였다.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후퇴하여 다시 고원으로 이동하였다. 1908년 여름에는 무천군 사리원 강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수비대를 습격하여 5명을 사살하고 탄약을 확보하였다. 1910년 4~5월경에는 문천읍에 주둔하고 있던 2~30명의 일본수비대를 습격하여 읍내를 한때 점령하였으나 곧 이은 일본 기병대의 공격을 받아 퇴각하였다. 영흥군 횡천면 상동산리 밤까지라는 산곡에 주둔하던 중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이 밤새 이루어졌다. 이때 부근에 주둔하고 있던 김영린 의병부대가 전투 소식을 듣고 합세하여 큰 피해 없이 퇴각할 수 있었다. 이번 전투가 끝나고 나서 윤동섭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푸쑹현(撫松縣)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 이미 와 있던 의병대원 들과 함께 정착하여 향후 무장투쟁을 준비하던 중 1913년 중국 관리들에 의해 무장해제 되었다. 1917년 다시 연해주 수이푼(秋豊) 부근으로 이주하였으며, 1920년 8월 유진규(劉陳奎) 등이 결성한 솔밭관 한족공산당에 가입하여, 간도와 국내를 드나들면서 군인 모집과 군자금을 조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1년 9월 16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제1중대 제3소대 제1분대를 이끌고 23일 함남 갑산군(甲山郡) 동인면(同仁面) 함정포(含井浦)의 일본경관주재소를 공격하여 주재소를 폭파하고 순사부장을 사살한 뒤 무기와 탄약을 확보한 뒤 30일 본영으로 돌아왔다. 1922년 고려혁명군에 참여하여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으며 사망년월일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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