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평윤
吳坪允1910. 5. 21 ~ 1951. 7.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금속노동조합 오사카지부
- · 일본공산당 오사카시위원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910년 5월 21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제주면(濟州面) 오라리(吾羅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윤병윤(吳炳允)·아라키(荒木)가 있다. 향리의 공립보통학교 6학년을 중퇴한 사실로 볼 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여겨진다. 21세 때인 1931년 4월 제주도 출신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던 오사카(大阪)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각종 공장을 전전하며 육체노동에 종사하였다. 1933년 당시 소속은 오사카세선합자회사(大阪細線合資會社) 직공이었다. 1932년 12월 민족운동에 투신하였다. 김강득(金康得)의 추천으로 일본전국노동조합협의회(日本全國勞動組合協議會)(이하 전협) 산하 금속노동조합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였다. 전협은 당시 일본지역 최대의 좌익 노동조합 연합체였다. 전협 오사카 지부는 강력한 항일투쟁 성격 때문에 늘 일제의 견제와 탄압을 받았다. 당시 김강득은 무너진 금속노동조합 오사카지부 재건에 힘쓰던 중이었다. 김강득의 가입 권유로 금속노동조합 오사카지부에 가입한 뒤, 각 공장을 중심으로 지부 재건과 동지 규합에 헌신하였다. 1933년 3월 일본공산당 오사카시위원회 동(東)지구 책임자 현호경(玄好景)의 제안으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동지구 문서 배포계에 배속되어 가두에서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노동자들에게 당 기관지 『적기(赤旗)』를 비롯한 항일문서를 나눠주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근무처인 오사카세선합자회사를 비롯한 각 공장에 당 세포조직을 만들어 당원 규합과 당 세력 확장에 진력하였다.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김강득과 현호경이 연이어 체포되었다, 남은 조직원들을 수습하여 전협과 당 지부 재건을 추진하였으나, 1933년 7월 28일 붙잡혔다. 1934년 1월 26일 약 6개월간 혹독한 조사 끝에 전협 금속지부 및 일본 공산당 당원임이 발각되어 오사카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그 해 2월 13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심 재판을 거쳐 1935년 10월 14일 오사카공소원(大阪控訴院)에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360일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7년 10월 20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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