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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載洵

載洵

1899. 12. 6 ~ 1939.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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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沈載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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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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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간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옥구군 이엽사(二葉社)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9년 12월 6일 전라북도 옥구군(현 군산시) 나포면(羅浦面) 부곡리(富谷里)에서 태어났다. 한자가 다른 이명으로 심재순(沈在洵)이 있다. 옥구군 임피면(臨陂面)에 위치한 임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군산 영명학교(英明學校)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군산 영명학교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전위렴(全緯廉, Junkin William McCleary)이 1903년 2월에 세운 학교다. 학업을 마친 이후, 서울의 대동인쇄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인쇄 관련 업무를 접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26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춘양당(春陽堂) 인쇄소에 취직하였다. 1927년 9월, 회사를 옮겨 동성사(同聲社)의 문선공(文選工)으로 일하면서 출판물에 필요한 서체와 크기에 맞는 글자, 문장 부호, 기타 기호를 주조한 다양한 활자를 뽑는 일을 하면서 사회주의 관련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면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동자·농민 조직이 서로 힘을 모아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1927년 가을, 고향인 옥구군에서 이엽사(二葉社)의 소작쟁의가 발생하였다.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白勢春三)가 설립한 이엽사는 전주부 삼례면(三禮面), 익산군 황등면(黃登面), 옥구군 서수면(瑞穗面)의 3개 농장에 총 1,200 정보의 농지를 가지고 있던 농업회사로, 소작쟁의 당시 서수 농장에서는 75%에 달하는 고율의 소작료를 거두고 있었다. 이에 옥구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서수 청년회가 소작쟁의를 주도하고 있었고, 이 소식을 듣고 1926년 12월 15일 「친애하는 동향(同鄕) 제군(諸君)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의 인쇄물을 300부 가량 인쇄하였다. 이 글에서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이 궁핍한 이유를 제국주의의 착취와 압박이라는 모순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 동포의 총 역량을 집중시켜 끝까지 투쟁하여 최후의 승리를 획득”할 것을 부르짖었다. 이를 위해 이엽사와 가와사키 농장은 물론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와 불이흥업주식회사(不二興業柱式會社)와 같은 자본가에게 저항할 수 있는 농민조합을 조직하여 투쟁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이 글을 고향의 신현국(申鉉局)·심상악(沈相岳)·심상호(沈相鎬)·황봉규(黃琫珪)·심호택(沈鎬澤)에게 보냈다. 특히 신현국에게는 소작쟁의에 참여하고 있는 옥구농민조합 본부에 보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 글을 받은 신현국은 같은 마을의 노진술(盧鎭術)을 통해 옥구농민조합에 전하였으나 일제 경찰이 이를 발견, 차압하였다. 1928년 1월 근무지 동성사에서 고향 사람 김병우(金柄祐)를 만나 사회주의와 신간회, 농민조합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간회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수면의 이엽사 농장쟁의 당시 격문을 통해 알게 된 김병우에게 도쿄에서 면학(勉學)한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식되었다. 1927년 12월 김병우가 보낸 편지를 시작으로 서로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만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김병우에게 ‘전 민족적 협동전선당 결성의 매개체로 조직된 신간회(新幹會)에 민족의 총 역량을 집중’시켜,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청년과 여성, 소부르주아가 이를 보좌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를 위해 농민들을 대상으로 마르크스주의 아래 훈련시키며, 고향인 옥구군에서는 임피농민조합을 만들고 정치부와 재정부, 교육부, 투쟁부, 선전부, 조사부, 기관부 등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928년 12월에 동성사가 폐쇄되자 양복점에서 근무하였다가 1930년 9월 부친이 사망하면서 고향인 옥구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이른바 출판법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혀 전주지방법원에서 1931년 8월 19일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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