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조
禹永朝1870. 10. 15 ~ 1963. 3.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산남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0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부동면(府東面) 하의리(下宜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성장(聖章)이며, 호는 방운(訪雲)이다. 이명으로 우창길(禹昌吉)과 한자가 다른 우영조(禹永祚)를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때 공신 우배선(禹拜善)의 11대손이다. 한말 의흥집포진(義興戢捕陣)과 청송약포진(靑松約炮陣)에 종사하며 ‘화적(火賊)’의 진압에 참여하였다.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병(山南義兵)이 경상도 일원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진보(眞寶)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같은 해 4월 창의장 정용기(鄭龍基)가 신광면(神光面) 우각동(牛角洞)에서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 참령(參領) 신석호(申錫鎬)의 간계에 속아 체포되었다가 부친 동엄(東广) 정환직(鄭煥直)의 주선으로 석방된 뒤, 그 해 8월 의병진이 재구성되자 다시 입대하였다. 1907년 10월 7일 입암전투(立岩戰鬪)에서 정용기를 비롯하여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권규섭(權圭燮) 등의 지휘부가 사망한 뒤, 곧이어 10월 9일 산남의병은 정환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정비하였다. 당시 청송지역에서는 중군장 이세기(李世基), 좌포장 임용상(林龍相), 군문집사 김진영(金震榮), 장영수위 배연집(裵淵楫), 진군지휘 홍우섭(洪禹燮) 등이 참여하였고,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산남의진의 청송지역 유격대를 맡아 1907년 (음)8월 14일 청송군 안덕면(安德面) 신성리(薪城里)에서 신성전투를 치루는 등 대일항전을 벌였다. 1907년 12월 11일 정환직이 사망한 뒤, 산남의병의 의병장으로 추대된 최세윤(崔世允)은 북상계획을 중단하고 경상도를 중심으로 지구전을 계획하여 24개 지역, 79명으로 구성된 지역 활동 책임자를 선정하였다. 이때 서종락 부대는 산남의병의 지역분대인 청송 동부진을 주도하며 주왕산(周王山)을 중심으로 청송읍과 부동면, 그리고 부남면(府南面) 일대에서 활동하였는데, 서종락 부대의 중군(中軍)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서종락 휘하에서 총기를 휴대하고 청하군(淸河郡) 죽장면(竹長面) 상오사리(上五舍里)의 이재원(李在元)으로부터 군수품으로 수집하였고, 같은 해 3월 청송군 현북면(縣北面) 고와곡동(高臥谷洞) 박태래(朴泰來)로부터 군수품을 조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0년 2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