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順明
順明1881 ~ 1938. 12.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회 멕시코 메리다지방회
- ·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 · 오학기나지방회
- · 묵경지방회
- · 베라크루스지방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출신이다. 1938년 『신한민보』에 보도된 사망기사에 따르면 당시 58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이민을 떠나 1905년 5월 11일 멕시코의 살리나 크루즈(Salina Cruz) 항구에 도착한 1,018명의 한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멕시코 유카탄반도(有佳團道, Yucatan Peninsula) 메리다(美利多, Merida)에 정착한 후 농장 노동을 하였다. 1909년 국민회(國民會)는 황사용(黃思溶)과 방화중(邦化重) 두 사람을 견묵(遣墨)위원으로 멕시코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멕시코 한인들을 대상으로 국민회 설립 취지와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5월 9일 메리다지방회를 조직하였고 이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2년 1월 오학기나(五岳基那) 지방으로 이주한 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오학기나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15년에는 오학기나지방회 학무원으로 선임되어 한인 2세대들의 교육에 노력을 기울였다. 1918년에는 부엘도지방의 코아트사코알코스(Coatzacoalcos, 과사괄코) 경찰소 법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6월에는 멕시코시티(墨京, Mexico City)로 이주하였고, 1927년 묵경지방회 사찰원, 1928년에는 구제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1월에는 묵경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이 시기 「군인가」를 지어 미주 한인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7월에는 자택에서 한인2세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국어학교를 운영하였다. 8월에는 국치기념식을 주관하며, 연설을 통해 항일의식과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34년 묵경지방회 부회장, 1935년에는 지방회장으로 대한인국민회창립 기념식, 3·1운동 기념식 등을 주관하였다. 특히 대한인국민회에 반발하여 설립된 자성단과의 통합을 위한 합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인사회의 통합과 독립운동의 역량 결집에 앞장섰다. 1937년 묵경지방회 대표원으로 활동하였고, 1938년에는 베라크루즈(Veracruz)로 옮겨 지방회 설립과 국어학교 운영을 독려하였다. 같은 해 3월 베라크루즈지방회 집행위원장 김명순과 안창호(安昌浩) 추도식을 주관하였다. 4월에 다시 멕시코시티로 돌아온 이후 묵경지방회 수전위원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이다가 그 해 12월 1일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13년 1월 30일부터 1934년 10월 18일까지 국민의무금 명목으로 총 8차례에 걸쳐 25원, 1919년 2월 20일 특별의연금으로 5원, 1919년 8월 7일에 독립의연금으로 10원, 1931년 12월 3일 ‘혁명운동 준비금’ 명목으로 25전, 1933년 3월 23일과 1935년 3월 21일 3·1운동 기념금으로 1원 50전, 1933년 9월 21일 국치기념금으로 1원, 1938년 5월 12일 국민부담금으로 3원 등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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