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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漢成

漢成

1894. 2. 2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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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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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안주(安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안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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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4) 1894년 2월 22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입석면(立石面) 입석리(立石里)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이명으로 유충산(劉忠山)을 사용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뒤 서간도 일대에서 정착하여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7월 서간도에서는 전만통일의회주비회(全滿統一議會籌備會)가 개최되었고, 11월 24일 서로군정서, 통의부, 광정단 등 8개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하여 정의부를 조직하였다. 정의부는 23개의 지방조직을 8개의 현으로 나누어, 관할 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산업부흥, 민족교육 등을 실시하고, 산하에 군조직을 설치하여 한국인의 안전과 무장활동을 병행하였다. 당시 정의부에 가입하여 총관소의 검무원(檢務員)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24년 3월, 조선총독부와 펑톈성(奉天省) 성장 등 주요 간부들은 회담을 갖고 「봉천성 훈령 제209호」를 발표하여 한국인의 무기소지를 규제하는 지령을 산하기관에 시달하였다. 이듬해 6월 「한인에 대한 취체에 관한 쌍방협정」과 7월에는 이에 따른 시행 세칙, 즉 「삼시협정(三矢協定)」을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중국 관헌과의 마찰이 자주 발생하였고, 중국 관헌에 붙잡힌 한국인은 일본 경찰에게 인도되어 옥고를 치르거나 사망하였다. 삼시협정 이후 삼엄해진 경비 속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28년 초 중국 관헌에게 붙잡혀 신의주로 송치되었다. 1928년 6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이듬해 3월 19일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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