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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춘

兪奉春

1896. 4.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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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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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회령(會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회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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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96년 4월 12일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팔을면(八乙面) 금생리(金生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유봉춘(兪鳳春)을 사용하였다. 1920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자금 등을 모집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북간도 국민회로도 불리는 대한국민회는 1919년 4월 옌지현(延吉縣) 춘양향(春陽鄉) 합마당(蛤蟆塘)에 본부를 두고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전신인 조선독립기성회는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고유문」을 발표한 후 단체 이름을 대한국민회로 개칭하였다. 산하에 민정조직과 군사조직을 두고, 민정조직은 중앙총부, 지방총회, 지회로 구성되었다. 1921년 초까지 대한국민회는 8개 지방총회와 산하 130여개 지회를 두었다. 당시 대한국민회에 가입하여 제1남부지방 주북지회(朱北支會) 모연원(捐募員)으로 활동하였다. 부장 장선순(張成順)의 명에 따라 만주지역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 등에 진력하였다. 1920년 8월 무렵 대원 박준학(朴俊鶴)·최정수(崔正洙)·황운흥(黃雲興) 등과 함께 허룽현(和龍縣) 서대사(四對社) 증봉동(甑峰洞) 일대에서 밀정을 체포하고 조사 이후 처단하였다. 1920년 9월 12일에는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국내로 잠입하여 고향인 함북 회령군 팔을면 창효동(彰孝洞) 일대, 이튿날에는 팔을면 원산동(元山洞)에 거주하고 있는 최태항(崔泰恒)·강기용(姜璣瑢)·최병연(崔秉淵) 등에게서 독립운동자금을 차출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그러나 활동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1921년 4월 무렵 회령경찰서에 붙잡혔다. 1922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31년 8월 18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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