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敦相
敦相1894. 9. 29 ~ 1935. 7.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단
- · 무순 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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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894년 9월 29일 충청북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유효준(柳孝俊)과 유효남(柳孝男)을 사용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부친 유제원(柳濟遠)과 모친 윤희순(尹熙順)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당(畏堂) 유홍석(柳弘錫)의 손자이며, 유홍석은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재종형(再從兄)이다. 가족 모두가 구한말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국권이 상실되고, 그 후 경술국치를 당하게 되면서 1911년 가족들을 따라 만주의 환런현(桓仁縣)으로 망명하였다. 1913년 조부 유홍석이 1915년에는 부친 유제원이 세상을 떠났다. 1915년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 윤희순이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독려하자 만주와 몽골 등지로 떠나 유인식의 문인과 친지들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음성국(陰聖國)·음성진(陰聖進) 형제와 18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을 조직하였다. 홍익단과 힘을 합하여 일군을 습격하려는 계획이 누설되면서, 일본군이 급습하여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군을 피해 효준(孝俊) 또는 효남(孝男)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재양성에 나섰다. 1926년 푸순(撫順)에 조선독립단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밤에는 마을 뒷산에서 군사훈련을 하였다. 군사훈련 중 사용한 병기들은 조직원들을 통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여 구매하도록 하였다. 1928년에 귀국하여 강원도 춘천, 충북 등지를 돌면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여 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였다. 가는 곳마다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민족정신 고취를 통해 광복에 대한 집념을 널리 알리곤 하였다. 1931년 다시 푸순으로 건너가 조선독립단을 이끌고,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1935년 6월 12일, 푸순 용옹신둔에 있는 처가인 음성국(陰聖國)의 집을 방문했다가 부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잠시 귀가하였다가 일제 경찰의 습격을 받아 붙잡혔다. 모진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다가 죽음에 이르려하자 모친 윤회순에게 알려 아들을 데려가라고 알려왔다. 아들을 데려오는 도중 어머니 품에서 7월 1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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