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京化
京化1894 ~ 1920. 10. 27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庚申慘變)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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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20년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희생될 당시 27세로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더불어 1920년 6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하였다. 이를 토대로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고,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은 이른바 북간도 지역의 ‘토벌’에 나섰다.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독립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였는데,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일본군에 의한 북간도 지역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거점을 잃은 독립군은, 1921년 들어 만주·소련의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향하거나, 남만주에 남아 조직을 재편하여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등으로 발전하였고, 일부는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이러할 때에 국내와 만주지역에 잔류하면서 함경북도 회령(會寧) 지역에서 항일활동을 벌이다가 1920년 10월 27일 일본군 보병 73연대에 붙잡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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