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원해룡

元海龍

1875 ~ 192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원해룡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구성(龜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항일활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평안북도 구성(龜城) 출신이다. 1923년 3월 14일 『독립신문』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48세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 지역에서 항일투쟁 중 밀정에게 붙잡혀 사망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발생하였는데, 이때 독립운동을 의무라 여기고 남만주 지역에서 독립정신 고취에 나섰다. 1920년 6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하였다. 일본 내각은 이를 토대로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은 이른바 북간도 지역의 ‘토벌’을 시작하였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의 기간에 독립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였고,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일본군에 의한 북간도 지역의 대대적인 ‘토벌’로 거점을 잃은 독립군은, 1921년 들어 만주·소련의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향하거나, 남만주에 남아 조직을 재편하여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등으로 발전하였고, 일부는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이때 만주에 잔류하면서 당시 만주에 머물렀던 친일파 집단인 일민단(日民團) 토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1923년에 밀정 강달주(姜達周)의 밀고로 혹심한 악형을 받다가 풀려났으나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곧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