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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삼

安致三

1892 ~ 19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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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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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회령(會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회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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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7)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창두면(昌斗面) 창두리(昌斗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29세인 것으로 보아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북간도 지역 독립운동 단체에서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인들은 국내에서 중국으로 떠나 새로운 터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국내의 독립운동가들도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해외로 떠나 새로운 기지를 설립하려 하였다. 서간도와 북간도를 위주로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들은 만주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로까지 진입하여 일군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은 더욱 고조되었다. 일제는 1920년 봉오동전투에서 패배한 것이 만주 침입 작전의 도화선이 되어, 서간도로부터 시작하여 북간도까지 대대적인 독립운동단체 ‘소탕’ 작전이 개시되었다. 독립운동 기지를 파괴하는 동시에, 가옥과 학교에 불을 지르고, 무고한 한인들을 살해하여 한인 사회에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후방 통신연락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허룽현(和龍縣) 무관둔구(茂官屯溝)에 숨겨놓았던 소총과 폭탄이 일본군에게 발각되면서 붙잡혔다. 1920년 11월 13일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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