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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선

尹敎善

1900. 11. 2 ~ 194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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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윤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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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재령(載寧)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재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재령읍 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0년 11월 2일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재령면(載寧面) 문창리(文昌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2월 28일 대영학교 여교사로 재직하던 박원경(朴源炅)은 서울로 가서 세브란스병원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로 인쇄하던 목사 김태연(金泰然)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서울의 정신여학교 교원 장선희(張善禧) 역시 김태연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서, 고향인 재령군의 재령읍에 위치한 명신학교 교장의 부인에게 전달하였다. 이상과 같이 박원경과 장선희는 서울에서 김태연으로부터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재령군에 전파함으로써 재령군 일대에서는 3월 초순부터 독립을 염원하는 기독교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3월 3일 재령군 화산면(花山面) 서림리(西林里)와 3월 5일 재령군 남률면(南栗面) 신환포리(新換浦里)에서는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가 일본 관헌에 의해서 발각되었다. 3월 6일 오후 9시경 황해도 재령군 남률면 해창리(海昌里)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을 비롯한 마을 주민 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학생 김두성(金斗星)·원형국(元亨國)·김원찬(金元燦) 등은 3월 5일 재령읍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준비하면서 태극기 등을 제작하였다. 한편 그 소식을 전해들은 재령읍 청년들은 김두성 등에게 재령읍 장터가 열리는 3월 9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김두성 등은 읍내 청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3월 9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9일 오후 2시 무렵 재령군 재령면 읍내 시장에서는 학생들과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가 열렸다. 학생과 청년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시위를 참여하였으며, 박원경은 시위 현장에 남장 복장을 하고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재령헌병분대 소속 헌병들이 출동해서 시위대의 해산을 시도했지만, 오후 3시 30분 무렵 개신교인이 중심이 된 시위대 500여 명과 함께 집결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만세시위의 해산을 강요하는 일본 군경을 상대로 기와 조각을 던지면서 저항하자 일본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일본 군경의 사격으로 시위대 3~6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당시 재령읍 만세시위에 참여한 일로 붙잡혀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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