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봉
尹敬奉1897. 1. 25 ~ 1941. 11.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7)
관련 사건
- · 동래군 구포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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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7) 1897년 1월 25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대리(大里,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의 파평(坡平) 윤씨 집성촌에서 윤정은(尹正殷)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윤봉경(尹奉敬)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29일 동래군 구포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은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그 소식과 독립선언서 등의 격문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구포 출신으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이었던 양봉근(楊奉根)이 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귀향하였다. 임봉래(林鳳來)와 유기호(柳基護)·윤경(尹涇) 등 구포면의 청년들은 양봉근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서울과 같은 만세운동을 구포에서도 추진하기로 결의하고, 구포시장의 장날인 3월 29일에 궐기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평소 일제 식민통치의 불합리성을 체험하고,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중에 만세운동 계획을 전해 듣고 아버지 윤정은과 함께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정오 무렵부터 임봉래 등의 인솔 하에 구포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쳤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대열에 합류하여 1,000명이 넘는 군중이 되었다. 일제 경찰은 선두에 있던 김옥겸(金玉兼) 등 학생 12인을 붙잡아 구포주재소로 끌고갔다. 이에 임봉래·윤정은 등과 함께 군중을 이끌고 구포주재소로 가서 끌려간 동지들을 구출하기로 결의한 다음,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포위하고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오후 3시 경 주재소의 유리문과 외벽을 몽둥이로 부수고 돌입하여, 주재소 내의 기물을 파괴하고, 일제 경찰과 헌병을 응징하였다. 그러자 일제 경찰과 헌병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해 시장과 주재소에 모인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42명을 붙잡았는데, 이 과정에서 붙잡혀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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