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강규
尹康逵1895. 3. 21 ~ 1968. 2.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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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5년 3월 21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梅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호규(尹鎬逵)이다. 1919년 매화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매화리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참여하였다. 이 만세운동을 가장 먼저 계획한 인물은 같은 마을에 사는 윤병관(尹炳寬)이었다. 윤병관은 친구 장식(張植)을 통하여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독립선언서 1장을 얻게 되면서 울진군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이 무렵 윤병관의 만세운동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고 전병겸(田炳謙)·장형관(張炯觀)·최효대(崔孝大) 등도 함께 힘을 모았다. 4월 5일과 6일 윤병관 집에서 주도자들과 논의한 끝에 거사를 매화리에 장이 서는 4월 11일 장터에서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를 각자 마련하도록 하고 흩어졌다. 4월 11일 거사 당일 태극기를 숨기고 매화리 장터로 향하였다. 오후 3시경 주도자들과 함께 가지고 온 태극기를 장터에 모인 장꾼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어서 최효대가 원남면 사무소 정문 앞에 현수막을 걸고 대형 태극기를 펄럭이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최효대의 선창에 장터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에 장터에 모인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며 100여 명의 사람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만세소리가 장터에 울리자 일제 경찰은 즉시 헌병을 파견하여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군중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다행히 흩어진 군중 틈에 있어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피신해 있다가 밤 10시 경 남계원(南啓源) 등과 함께 사람들을 이끌고 금매리(金梅里) 금매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는 곧 일본 경찰에게 알려져 헌병이 출동하면서 붙잡혀 울진경찰서로 이송되었다. 1919년 4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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