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源澤
源澤1854 ~ 1914. 2.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동우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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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사곡면(寺谷面) 호계리(虎溪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5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반대투쟁과 친일대신 이완용 처단을 시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 처리를 위해 일본 외무대신 하야시 다다스(林董)가 내한하자 서울 내의 민심이 들끓게 되었다. 동시에 황제양위설과 일본 도쿄(東京) 이어설(移御說)이 널리 유포되었다. 이에 1907년 7월 17일 동우회(同友會)와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황성기독교청년회 회원들의 주도로 반일 전단이 발행되었다. 7월 18일 서울에서는 1천여 명이 동우회 사무소에서 특별회의를 개최하여 윤이병(尹履炳)을 회장으로, 김재붕(金在鵬)을 부회장으로 선출하였고, 이때 동우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임원 선출 직후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민중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종로로 몰려갔다. 윤이병은 황제의 일본행을 막아야 한다고 연설하였으며, 회원들은 관련 대신들을 국적(國賊)이라 규탄하였다. 윤이병은 종로에서 군중에게 연설한 후 동우회원들과 함께 대한문 앞으로 갔다. 이때 대한문 앞에는 내각대신들이 황제에게 양위(讓位)를 강요한다는 소문을 듣고 분개하여 몰려든 많은 군중이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 일제 경찰과 충돌하였다. 7월 20일 황제의 강제퇴위 소식이 알려지자 이른 아침부터 동우회원과 일반 시민 수만 명은 석고단(원구단)에 집합하여 서소문 밖에 있는 총리대신 이완용의 집을 불태우고 부근의 순사파출소를 파괴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우회 간부와 회원과 일반 군중들이 체포되었고, 이때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08년 1월 16일 평리원에서 10년 유배를 받았다. 같은 달 21일 전남 지도(智島)에 유배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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