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만순
安萬淳1899. 3. 14 ~ 1968.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보은군 수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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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9년 3월 14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수한면(水汗面) 묘서리(描西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보은군 수한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수한면 교암리(敎岩里)에서 4월 10일 주민들의 만세운동 시도가 있었으나, 일제 경찰에 계획이 사전에 탐지되어 이 만세운동 계획은 실패하였다. 이로부터 이틀 후인 4월 12일 최용문(崔容門)·송덕빈(宋德彬)과 함께 묘서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보은군에서 발생한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던 3월 19일의 괴산읍(槐山邑) 만세운동 이후 다른 지역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향리에서의 만세시위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같은 동리의 최용문·송덕빈과 만나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를 통해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의 취지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최용문과 송덕빈도 적극적으로 동조, 지지하고 있다는 인식을 확인하였다. 전원의 만장일치로 곧바로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송덕빈·최용문과 협의하여 인근에 소재한 농암산(籠岩山)을 만세시위 장소로 선택하고, 만세운동 거사일을 4월 12일로 결정하였다. 이 직후부터 3인이 함께 동리 주민들의 규합에 나섰다. 묘서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만세운동의 일시와 장소를 홍보하였다. 4월 12일 오후 8시 경, 농암산에 6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농암산에 모인 60여 명의 주민들을 보고 고무되어 최용문·송덕빈과 함께 다시 한 번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운동의 취지를 힘껏 외쳤다. 산 위에 모인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함에, 최용문·송덕빈 함께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시위대를 형성한 주민들이 이어받아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최용문·송덕빈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조사를 통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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