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만길
安萬吉1901. 5. 14 ~ 1969. 4.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공주군 신상면 유구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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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901년 5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신상면(新上面, 현 공주시 유구읍) 신달리(新達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안만원(安萬元)을 사용하였다. 1919년 공주군 신상면 유구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신상면 유구장터 시위는 천도교에서 활동한 황병주(黃秉周)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황병주는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그 뜻을 이어 자신도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황병주는 유구장터 장날인 1919년 3월 14일 오후 장터로 나가 한 무리의 사람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황병주의 호소를 듣고 공감하여 이우상(李雨相) 등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대에 합류하여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유구주재소의 순사들이 출동하여 즉시 해산을 명령하면서 시위의 중심 인물인 황병주를 강제로 연행하였다. 이에 분노한 이승현[(李升鉉), 성현(聖鉉)]은 주재소로 가서 황병주를 구출하자고 주장하였다. 황연성(黃璉性)·박준빈(朴準斌)·노상우(盧相羽)·유석우(柳錫瑀)·이우상 등과 함께 이승현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독려하였다.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서 황병주의 연행에 항의하며,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하지만 주재소의 순사들은 황병주의 석방을 거부하고, 시위대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주재소 순사들의 태도에 분노한 박준빈과 현우석(玄宇錫)이 순사들을 구타하고, 기물을 파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고 적극 호응하여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 창문에 돌을 던져 깨뜨리는 등 주재소의 시설을 파괴하면서 황병주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유구장터에서 격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여 주재소를 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공주경찰서는 곧장 지원 병력으로 10여 명의 순사와 헌병을 유구주재소로 급파하여 만세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 인물 2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황연성·박준빈·이승현 등과 함께 붙잡혀 공주경찰서로 끌려갔다. 이 일로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과 벌금 30원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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