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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

安東宣

1895. 9. 12 ~ 192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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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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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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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9월 12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현 무안읍) 교촌리(校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안동선(安東鮮)을 사용하였다. 1919년 무안군 외읍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은 외읍면 일대의 유지였던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3월 19일 밤 김순기의 집에 뜻을 함께하는 10여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다음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이후 밤새도록 친일파의 반성과 민중의 궐기를 촉구하는 경고문(警告文)을 수십 매 작성하는 한편, 시위에서 흔들 태극기도 종이를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3월 20일 새벽부터는 밤새 작성한 경고문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붙이기 시작하였다. 이 때 자택 벽에도 태극기를 그리고 조선 독립 만세라고 쓴 경고문을 부착하였다. 이후 오전 10시 무렵 사람들과 함께 외읍면 남산(南山)에 올랐다. 이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여, 남산을 내려와 무안공립보통학교(務安普通學校) 방면으로 행진하였는데, 이 때 시위대의 수는 100여 명이었다. 무안공립보통학교 앞에 도달하여서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났으며, 출동한 일제 헌병들과 대치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다시 방향을 바꾸어 시위대를 이끌고 외읍면 일대를 행진하니, 행진을 보고 독립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계속 참여하여 그 수가 5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대의 수가 점점 불어나자 무안군수와 목포경찰서장이 병력을 끌고 출동하여 시위대와 다시금 대치하였으나, 주도자들의 대처로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계속해서 만세를 외치며 외읍면 일대에서 행진하다가 오후 10시 30분 경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그러나 시위 과정에서 일제 헌병과 충돌하고, 이후 검속 과정에서 주도자를 비롯한 57명이 체포되었을 때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목포경찰서 목포분감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4월 28일 특사로 풀려났다. 풀려나던 날 목포 일대의 청년들이 몰려 와 기뻐하면서 석방을 환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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