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安落汝

安汝

1889. 12. 15 ~ 1924. 5. 1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安落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괴산군 청안면 청안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1889년 12월 15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안낙삼(安落三)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30일 괴산군 청안면 청안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괴산군 청안면 청안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3월 19일 괴산읍(槐山邑)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김수백(金壽伯)·(壽福)·이태갑(李泰甲)·장성원(張聖源)·박순옥(朴巡玉)·(明來)·함재원(咸在元)·신강면(辛康勉) 등 청안면의 청년들은 괴산읍 만세시위 소식에 자극을 받아 청안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들은 논의를 통해 청안장터의 장날인 3월 30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이후 주도자들은 만세시위 당일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 제작, 독립선언문의 등사, 각 지역 주민들의 참여 독려를 위한 지역별로 조직책을 선정하여 조직망을 꾸리는 등 체계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30일 오후 1시경 청안장터 만세시위 주도자들은 시장의 외곽에서 사전 연락을 받고 모인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장터로 가는 길에 이들의 호소를 듣고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하였다. 김수백 등이 나눠주는 태극기를 품에 숨기고 장터로 이동하여 만세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3시 30분 청안장터의 한복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그 직후 이태갑이 나서서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호응하여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시위대의 규모는 2천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강압적으로 해산을 명령하면서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유웅렬(劉雄烈) 등 7명을 주재소로 끌고 갔다.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던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끌고 가는 일제 경찰의 행위는 시위대를 크게 자극하였다. 김수백·이태갑 등의 지휘에 따라 끌려간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재소로 달려갔다. 주재소 앞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일제 경찰은 석방 요구에 불응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군중들의 해산을 압박하였다.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한 김명진(金明鎭)이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주변의 주민들에게 주재소를 습격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임수근(林水根)·김춘경(金春京) 등의 주민들과 함께 주재소에 돌을 던져 창문을 파손시켰다. 이렇게 만세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면서 또다시 여러 명의 주민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김명진·임수근·김춘경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이후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1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