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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득

安光得

1897. 9. 12 ~ 193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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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광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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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永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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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동군 매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9월 12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 옥전리(玉田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광덕(光德)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2일부터 6일까지 일어난 영동군 매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인 영동군 매곡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생각으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지역에서 신망이 있던 안준(安準)·김용선(金容善)·안병문(安秉文)·신상희(申相熙) 등과 인적이 드문 안녕(安寧) 마을에서 비밀회합을 갖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장복철(張復哲), (復喆)·임봉춘(林奉春)·(燦圭)·남도학(南道學) 등도 동지로 규합하였다. 이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문종이에 필사하고 태극기 400여 매를 제작하였고, 거사일을 밤나무 묘목장의 주민동원 작업이 예정된 4월 2일로 결정하였다. 또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여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담당하기로 하였고, 안준은 낭독 후 만세 선창을, 김용선은 각 마을에 대한 연락과 태극기 배포를 담당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전 밤나무 묘목장에 모인 100여 명의 주민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호응하자, 안준의 만세 선창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후 안준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노천리(老川里)의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진행하고, 면장과 면직원을 설득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선창케 하였다. 이날은 인근 황간(黃澗)읍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주민들의 시위 참여를 위해 시위대를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오후 5시 경 황간으로 향했다. 하지만 황간장은 장날 만세시위를 예상한 일제 경찰에 의해 이미 철시되었기에, 다음날의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4월 3일의 만세운동에는 옥전리, 노천리를 비롯한 매곡면의 여러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하여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틀간의 만세시위에 일제 경찰의 특별한 탄압은 없었다. 이에 기세가 오른 만세 시위대를 지휘하여 4월 4일에는 오전 11시 경부터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에는 지난 밤 만세 시위의 영향으로 800여 명의 주민이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고, 면장 이하 면사무소의 직원들과 거주 일본인까지 만세시위에 참여시켰다. 전날과 같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안준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대규모로 발전하자, 일제는 이웃한 추풍령(秋風嶺)의 헌병분견대원과 수비대를 매곡면으로 급파하여 만세시위를 탄압하였다. 이때 일제 헌병대로부터 만세시위의 주도 인물로 파악되어 임진규(林珍圭)·남도학과 함께 추풍령 헌병분견소로 끌려갔다. 이에 안준·장복철·안병문·김용선·신상희 등은 남아있던 시위대 150여 명을 지휘하여 추풍령의 헌병분견소로 쫓아가 붙잡혀 간 동지들을 구출하려 했으나, 구출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헌병분견소의 창고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뒤 4월 5일 새벽 5시경 해산하였다. 이들을 구출하려는 시도는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일제 헌병의 조사를 받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점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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