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순
安京順187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장윤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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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경기도 수원부(水原府) 서면(西面) 장대리(場垈里)(현 화성시 동부 일대)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나이가 38살이었으므로 187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의병에 가담하였는데 장윤석((張允石) 또는 (張允錫))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장윤석은 본래 대한제국의 병졸 출신으로 1907년 강제 해산을 당한 후 의기한 군인들 중 하나였다. 충청 출신이자 고향을 근거지로 활동한 장윤석의 의병부대에 수원 출신인 그가 어떠한 경위로 가담하게 되었는지, 의병 활동의 전개과정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08년 주소지가 여전히 수원인 것으로 보아 어떠한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장윤석의 의병부대와 의기투합하게 되어서 함께 충청 지역으로 내려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1907년 (음)11월 장윤석 의병부대의 동료 16명과 함께 전북 진산군(珍山郡)(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남면(南面)과 충남 연산군(連山郡)(현 논산시 연산면 일대) 등지의 민가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전북 진산군 염정동(廉貞洞)(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같은 달에는 충남 연산으로 올라가 그곳 동면(東面) 한삼천리(汗三川里)(현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로 갔다. 다시 충남 진잠군(鎭岑郡) 상남면(上南面) 점촌(店村)(현 대전광역시 서구 기성동)에서, 또 다시 연산과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현 논산시 가야곡면)으로 올라가는 등 전북, 충남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전투에 필요한 군자금과 생활필수품을 모집하였다.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08년 7월 1일 연산군 벌곡면(伐谷面)(현 논산시 벌곡면)에서 주막에 잠입해있던 순사 최지방(崔之方) 등에게 붙잡혀 공주경찰서로 넘겨졌다. 폭동피고사건(暴動被告事件)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08년 8월 26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공모죄, 강도죄로 종신형(무기징역)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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