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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周鉉

周鉉

187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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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沈周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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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唐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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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주원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72년 충청남도 당진(唐津)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양반 신분이었으나 의병에 합류하기 전까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08년 최종성(崔鍾成)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장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처음 의병 활동에 나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08년 중순에는 이미 정주원(鄭周源) 의병부대의 부장(副將) 최종성의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최종성은 1908년 당시 약 30여 명의 의병들을 지휘하여 충남 당진·서산(瑞山)·해미(海美, 1914년 서산에 통합)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908년 5월 3일 정선경(鄭善京) 등의 동료들과 함께 최종성의 지휘 하에 당진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巡査) 유희영(柳榎零)을 사살하였다. 1908년 7월 의병장 정주원이 일본군에 붙잡힌 이후에도 최종성 의병부대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1909년 1월 3일 밤 당진군 외맹면(外孟面)의 송당리(松唐里)와 외창리(外倉里) 등지에서 최종성 부대의 동료 의병 정선경·하군배(河君輩) 등과 함께 당목(唐木) 35척(尺), 솥, 현금 3원 등을 의병 활동을 위해 징발하였다. 같은 해 5월 15일 외맹면 찬동(讚洞)에서 의병 수색에 나선 당진주재소 순사들과 교전 끝에 부상을 입고 하군배·정선경과 함께 붙잡혔다. 1909년 5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3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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