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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誠之

誠之

1831. 12. 18 ~ 1904.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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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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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靑松)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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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감은리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31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파천면(巴川面) 덕천리(德川里)에서 아버지 심하수(沈鍜壽)와 어머니 남평문씨(南平文氏)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소류(小流)이다. 1848년 둔와(遯窩) 유양흠(柳養欽)의 문하에서 『중용(中庸)』을 배웠으며, 1854년 족숙 심용(沈鎔)과 함께 화양서원(華陽書院)을 방문하고 『송자전서(宋子全書)』와 『언행록(言行錄)』 등을 읽고 청송지역에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학풍을 열었다. 심능규(沈能奎)·장병두(蔣柄斗)·심의춘(沈宜春) 등이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초시에 여러 번 입격하였으나 회시에서 실패한 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독서에 전념하였다. 1883년 부친상을 당하고 상례를 치룸에 있어 주공가례(朱公家禮)를 준수하였으며, 선대 조상이 남긴 기록인 선세유적(先世遺蹟)을 수집하여 『세록(世祿)』 2책을 지었다. 1888년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1894년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896년 결성된 청송 의병부대의 창의장으로 추대되어 의병진의 결성과 진용의 정비, 의병 활동 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乙未事變)과 같은 해 12월 31일 단발령(斷髮令)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1896년 정월 창의한 안동(安東) 의병부대의 소모장 유시연(柳時淵)이 포수 20여 명을 대동하고 청송으로 들어와 관아의 무기고를 열고 병기를 탈취하려 하자 각처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檄文)」이 도착하였다. 1896년 3월 12일 청송유림 100여 명이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창의하기로 하고,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창의장으로 추대되었다. 3월 13일 비로소 객사로 나아가 창의장의 직책을 수락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5일 부장 조성박(趙性璞), 우익장 권성하(權成夏), 좌익장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와 서기 이하를 선발하였다. 3월 16일 대장기(大將旗)를 앞세우고 창의하였으며, 3월 17일 축문(祝文)과 창서사(唱誓辭)를 낭독하며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3월 22일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1896년 4월 6일 청송 의병부대의 효율성과 재정 절약을 위해 진영을 3영(營)으로 합하고, 참모 4인과 서기 6인으로 편성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진용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4월 29일에는 참모 신동호(申東鎬)의 의견에 따라 예하 각 부대를 창의장 중심으로 편성하여 상영(上營, 摠營 혹 內營)과 그 아래 각영(各營)으로 편제하고 상영은 대장(大將)을 중심으로 부장(副將), 그 아래 중군(中軍)과 좌·우익장(左·右翼將)을 두었다. 그리고 각 영은 사병도총(司兵都摠)과 소모장(召募將)이 지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군비와 군수품을 수집하여 재정을 확충하는 한편, 1896년 4월 17일부터 각 면의 방비를 위해 외방장(外防將)을 설치하여 현서외방장(縣西外防將)에 김진구(金鎭九), 4월 20일 부서외방장(府西外防將) 심의철(沈宜喆) 등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주변 지역의 의병부대와 연결하기 위해 그 해 5월 9일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 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5월 22일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현 영덕군)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1896년 5월 12일 의성(義城)의병부대와 이천(利川)의병부대가 관군의 공격을 받고 청송으로 들어오자 5월 13일 청송 의병부대는 진용을 합하여 의성 연합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그 해 5월 14일 청송군 안덕면(安德面) 근곡(斤谷)에 머물면서 중군장 김대락, 진무(鎭撫) 정진도(鄭鎭燾), 소모 심능장(沈能璋), 참모 오세로(吳世魯), 서기 윤도혁(尹道爀), 외방장 안병룡(安秉龍), 군사 이경식(李景植), 집사 윤경승(尹景昇) 등이 거느린 포정 60명을 안덕면 감은리에 파견하여 관군과 접전토록 하였다. 이른바 감은리전투(感隱里戰鬪)이다. 이 전투에서 관군 7·8명을 죽이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1896년 5월 24일 국왕의 해산 칙유문(勅諭文)을 받고, 5월 25일 청송군 관내 8개면으로 분진(分陣)을 결정하였다. 부장 조성박을 현내(縣內), 사병도총 남승철(南昇喆)을 현동(縣東)과 현남(縣南), 중군 김대락을 현북(縣北), 선봉장 홍병태(洪秉泰)를 현서(縣西), 우익장 서효신(徐孝信)을 부동(府東), 좌익장 권성하를 부내(府內), 소모장 심능장을 부서(府西) 등의 외방장에 임명하여 의병진을 면군체제(面軍體制)로 전환하였다. 그 후 청송 의병부대는 같은 해 6월 15일 경주(慶州)연합의병부대의 결성에 참여하여 6월 18일 경주성전투를 벌였으며, 6월 28일 영덕연합의병부대의 결성에 참여하여 그 해 7월 13일과 14일 영덕전투를 벌이는 등 8월까지 활동하였다. 청송 의병부대 해산 후 향리의 소류정(小流亭)에 머물며 제자들과 더불어 향음례(鄕飮禮)를 행하고, 백록동규(白鹿洞規) 및 남전향약(藍田鄕約) 등을 강(講)하며 은거하였다. 저술로는 『소류집(小流集)』 4권 2책이 있다. 1907년 심의경(沈宜敬)과 심동택(沈東澤)이 편집·간행하였다. 시(詩)·서(書)·잡저(雜著) 등으로 편책된 목판본이다. 격문으로 「답안동의영격문(答安東義營檄文)」과 「소모경주사민문(召募慶州士民文)」 등이 주목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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