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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문

金洛文

1872. 6. 18 ~ 194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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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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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醴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진
  • · 독립의군부
  • · 광복회
  • · 민단조합(民團組合)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72년 6월 18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감천면(甘泉面)에서 안동(安東) 출신 아버지 김순흠(金舜欽)과 어머니 안동 권씨安東權氏 사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춘달(春達), 호는 모죽(慕竹), 이명은 김욕문(金欲文)이다. 1919년 당시 주소지는 문경군(聞慶郡) 동로면(東魯面) 석항리(石項里)였고, 직업은 서당(書堂) 교사였다. 아버지 김순흠(1977년 애국장)은 1896년 전기의병 때 이강년(李康秊)의 문경의진(聞慶義陣)과 허위(許蔿)의 김산의진(金山義陣) 등에 참여하려 하였으나, 이들 의병의 해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7년 이강년이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물심양면으로 이를 후원하였다. 하지만 국운이 날로 기울어지자 이를 개탄하며 1908년 9월 28일 단식으로 자결하였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07년 제천(堤川)에서 활약하던 이강년 의진에 참가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단양(丹陽)·충주(忠州)·청주(淸州)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펼치다 붙잡혀 3년 6개월간의 옥고를 겪었다고 한다. 출옥한 뒤 1911년 이동하(李東下)에게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동하는 1907년 이강년 의진의 참모장으로 활동하다가, 1908년 6월 청풍(淸風)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이강년이 잡히고 의진이 무너지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3년 임병찬(林秉瓚)이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를 조직하자 이에 가담하였다. 또 1914년 9월 만주에서 돌아온 이동하가 비밀결사 민단조합(民團組合) 결성을 주도하자 이에 참가하였다. 민단조합은 1915년 이동하의 주도로 이강년의 조카 이식재(李湜宰), 이강년 의진의 군자장(軍資將)을 지낸 최욱영(崔旭永), 13도창의소 총대장 이인영(李麟榮)의 동생 이은영(李殷榮), 이강년 의진의 좌군장(左軍將)을 지낸 이세영(李世永) 등 이강년 의진과 관련된 의병 세력을 기반으로 결성되었다. 1915년 7월 광복단(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결합한 광복회(光復會)에서도 활동하였다. 1916년 10월 광복회의 채기중(蔡基中)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강원 영월(寧越) 중석광산을 공격한 활동에도 관련하였다고 한다. 이때 광복회원 10여 명이 광산 운영 자금을 빼앗아 군자금으로 활용하고자 광부로 위장하여 잠입하였으나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의병 세력을 기반으로 한 민단조합은 광복단이나 대한독립의군부와 연계되어 독립군 지원 및 군자금 모금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민단조합은 재산가들로부터 운동 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여 1916년 8월 예천(醴泉)의 박심수(朴尋洙), 안동(安東)의 김숙헌(金叔憲)에게 군자금을 요청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 뒤 경남 밀양(密陽)의 박인근(朴仁根)으로부터 200원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 정보망에 걸려 이동하·이은영·이식재·이세영 등과 함께 잡혔다. 1919년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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