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학
安美鶴1895. 5. 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95년 5월 4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온성면(穩城面) 동화리(東和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안태현(安泰現)을 사용하였다.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에 소속되어 군자금 모금, 병력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북로독군부는 1920년 5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대한국민회군(大韓國民會軍)이 군사작전을 더 크고 강력하게 시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였다. 봉오동에 근거지를 두었으며, 대한북로독군부의 부장(府長)은 최진동(崔振東), 부관(副官)에는 안무(安武)가, 군사작전의 책임자는 북로제1군사령부 부장(部長)으로 임명된 홍범도가 선임되었다. 온성에 거주하던 중이던 1920년 7월, 대한북로독군부에서 동지 10명과 함께 임원에 선임한다는 선임장을 보내오자 이를 승낙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함께 징모과원(徵募課員)으로 선임된 동지 오기준(吳琪準)·오현준(吳現準)과 함께 박종욱(朴宗郁)을 설득하여 대한북로독군부 경찰 사무에 종사해 줄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같은 달 대한북로독군부에서 군용 짚신을 모집하여 보내달라는 요청이 오자, 동지들과 함께 120원을 조달하고 짚신 300켤레를 매입하여 대한북로독군부로 송부하였으며, 온성군 영와면 면장 최봉길에게 대한북로독군부로 보낼 짚신을 모집하도록 권유하기도 하였다. 1920년 8월 동화리에서 동지들과 회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장 최진동의 명의로 작성된 선유문(宣諭文)을 인쇄할 것을 계획하였다. 선유문에는 독립을 위해 독립군은 계속 군인을 모집하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과 동포들은 일치 협력하여 일본을 배척하고 조선독립을 도모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온성군청에서 노판(鑪板)과 원지(原紙) 등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으로 선유문 20매를 인쇄하여 영와면 면장을 비롯하여 여러 명에게 배포하였다. 이러한 일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9월 28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으나,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같은 해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