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灌之
灌之1834 ~ 1899. 5.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기의병(심성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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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834년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현 안덕면) 복리(福里)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충혜왕(忠惠王) 때 전리판서(典理判書) 악은(岳隱) 심덕부(沈德符)의 6세손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1896년 3월 16일 창의한 청송 의병부대의 결성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896년 1월 안동의병부대와 예안(禮安)의병부대이 결성되었다는 소식이 청송 지역에도 전해졌고, 곧이어 국왕 명의의 애통조(哀痛詔)와 주변 각 지역의 의병진에서 발송한 통문(通文)과 격문(檄文)이 날아들었다. 그 해 3월 2일에는 안동의병부대의 안동부(安東府) 점령과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의 도망 등에 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며, 청송군수 남유희(南有熙) 역시 도망간 상태였다. 3월 9일 안동의병부대의 소모장(召募將) 유시연(柳時淵)이 청송군 관아의 무기고를 열고 병기를 탈취하는 한편, 격문을 발송하여 창의하지 않는 이유를 추궁하였다. 이에 청송향교 향원들과 함께 창의를 주도하였다. 1896년 3월 10일 청송향교의 향원 100여 명이 모인 향회(鄕會)에서 서효원(徐孝源) 등과 함께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내걸고 창의를 추진하였다. 다음날인 3월 11일 청송향교의 향원들을 비롯한 군중이 대장을 천거하도록 간청하였다. 이에 서효원과 함께 “귀중한 것은 모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일이라도 물어서 도모하라 했는데, 하물며 이와 같은 큰 거사에 있어서 가벼이 행할 수 있으리오.”라며 신중하게 결정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3월 12일 청송향교에서 200여 명과 함께 향회를 개최하여 창의를 결의하고,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심성지(沈誠之)를 창의장으로 추대하였다. 3월 15일 부장 조성박(趙性璞), 우익장 권성하(權成夏), 좌익장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와 서기 이하를 선발하였으며, 3월 16일 대장기(大將旗)를 앞세우고 창의하였다. 1896년 3월 17일 권탁수(權鐸洙)·민성호(閔晟鎬) 등과 함께 6인의 백의종사(白衣從事)에 차출되어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날 서효원이 축문(祝文)을 지어 축원하였으며, 김상길은 창서사(唱誓辭)를 낭독하였다. 3월 22일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신(徐孝信)을 소모장(召募將), 서효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하였다. 3월 23일에는 남승철(南昇喆)을 사병도총(司兵都摠), 3월 24일에는 김진만(金鎭萬)을 모량도감(募粮都監)에 임명함으로써 의병진은 차츰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청송 의병부대가 창의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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