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沈寬用

寬用

1883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沈寬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남 단천(端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흥업단
  • · 혈성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2년 당시 40세인 것으로 보아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흥업단(興業團), 혈성단(血誠團) 등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16년 7월 중국 창바이현(長白縣) 관동면(館洞面) 면장직을 담당하고 있던 중, 창바이현에서 한국인 경찰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중국의 노예가 되는 치욕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로 인해 중국 관리로부터 사형을 처할 것이라는 위협에 시달렸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중국 창바이현 14도구(十四道溝)에서 거주하며 김곡(金谷)·박동식(朴東植)·김종택(金宗澤) 등과 함께 지역 내 유력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무장독립운동단체였던 흥업단(興業團) 장백지단(長白支團) 제2지부 총무직을 담당하였다. 흥업단은 1920년 백두산 서남쪽에 있는 중국 푸쑹현(撫松縣)에서 조직된 단체로, 창단 목적은 산업의 진흥과 항일무력투쟁이었다. 창단 이후 흥업단은 허룽현(和龍縣)에 있던 대종교(大倧敎) 총본사(總本司)와 왕칭현(汪淸縣)에 있던 북로군정서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였다. 창단 당시 주요 인물로는 단장 김호(金虎), 부단장 김혁(金赫), 총무 윤세복(尹世復), 재무 이원일(李源一), 경호 오제동(吳濟東), 교섭 이현익(李顯翼) 등이 있었다. 흥업단 간부진들은 대다수가 대종교인이었다. 흥업단 장백지단 제2지부에는 29명의 통신원, 20명의 경호원이 있었으며 권총 8정이 갖추어져 있었다. 간부진은 지부장 고재을(高在乙), 고문 김곡(金曲), 재무 정도일(鄭道日), 서기 고장룡(高張龍), 문서·검사 한석도(韓錫道), 경호부장 조완술(趙完述), 통신부장 한정식(韓正植), 서기 탁문환(卓文煥) 등이었다. 혈성단 단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혈성단은 1920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애국청년혈성단(大韓愛國靑年血誠團)으로 추정된다. 1920년 11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오운현(烏雲縣) 배달둔(倍達屯)에서 조직되었던 단체였으며, 주요 간부진으로는 단장 김국초(金國礎), 부단장 김춘일(金春日), 서기 정태룡(鄭泰龍) 등이 있었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벌어졌던 청산리전투 이후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은 밀산(密山)에 집결하여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였다. 이때 혈성단은 북로군정서·대한국민회·대한신민회·대한독립군 등과 함께 대한독립군단이 만들어지는 데 참여하였다. 1921년 6월에 일어난 자유시참변 이후 만주로 다시 돌아와 활동하였다. 혈성단은 만주로 돌아온 이후 지단을 건설하려고 하였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창바이현에 지단을 설치할 때 제3영 군사령(軍司令)을 담당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