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승
辛厚承1892. 12. 5 ~ 1946. 5.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1919 3월 개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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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892년 12월 5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군내면(郡內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마전군(麻田郡, 현 경기도 연천군)과 장단군에서 군 서기로 일하다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후,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기독교 남감리파 감사로서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都面) 북본정(北本町)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서 평양·안주·의주·선천·원산·진남포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천도교·개신교·불교 등 종교계 대표와 학생대표들은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기 위해서 인편을 통해서 독립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파하였다. 개성군에서는 개성 북부 예배당의 목사인 강조원(姜助遠)이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부터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조원(姜助遠)은 독립선언서를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출신으로 충교(忠橋)예배당 내에 있는 유치원 교사 권애라(權愛羅)에게 전달하였으며, 권애라는 독립선언서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에게 건내주었다. 이에 2월 말부터 호수돈여학교 학생회장 이경신(李瓊茞)은 이정희(柳貞熙)·조화벽(趙和璧)·김낸시·이봉근(李鳳根)·조숙경(趙淑卿)·김신렬(金信烈)·최옥순(崔玉順) 등을 규합해서 3월 3일 개성 시내와 개성 헌병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 직후인 3월 3일 저녁에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세시위가 개성 시내에서 재개되었다. 3월 2일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 김익중(金翊重)·송영록(宋永錄)·심적룡(沈赤龍)·김정식(金貞植)·안종화(安鍾和)·김수천(金壽千) 등은 미리 준비한 일장기를 이용해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3월 3일 저녁에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 200여 명은 개성 시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한편 3월 3일 철원 일대에서 전도 활동을 한 후 거주지인 개성으로 귀가하는 도중에 용산역에서 서울 일대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개성으로 돌아가서 그날 만세시위를 주도한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만나서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시위 내용을 전하면서 재차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3월 4일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개성 시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남대문울 지나서 관덕정(觀德亭)으로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은 기마대와 소방대를 앞세워서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경하게 탄압하였다. 일제 군경에 의해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그 해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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