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균
申斅均1850. 4. 30 ~ 19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홍천군 홍천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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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50년 4월 30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북방면(北方面) 성동리(城洞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신여균(申與均)을 사용했으며, 천도교인(天道敎人)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1일 홍천군 홍천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천군 홍천면 만세운동은 고종황제 장례식에 참례(參禮)하기 위하여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차봉철(車奉哲)에 의하여 처음 계획되었다. 기독교 감리교인(監理敎人)인 차봉철은 귀향한 후 기독교인 서상우(徐相佑)와 천도교인 오창섭(吳昌燮)을 만나 만세시위를 결의하였고, 홍천면에 장이 서는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세 사람은 교인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을 규합하였고, 북방면은 오창섭이 맡았다. 3월 30일, 하오안리(下吳安里)에 사는 천도교인 노동근(盧東根)의 집에서 오창섭을 만난 자리에서 오창섭으로부터 4월 1일 신장대리(新場垈里)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다. 오창섭에게서 만세운동이 우리나라가 독립할 기회라고 하며,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권유받았다. 이에 집마다 방문하여 시위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독려하는 등 주민 동원에 큰 힘을 쏟았다. 그 외에 김영옥(金永玉)·최승혁(崔承赫) 등도 천도교인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거사 당일, 아침 일찍 주민들과 신장대리 장터로 향하였다. 이날은 홍천·인제(麟蹄) 간 도로공사로 인부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여, 북방면 주민들은 인부로 가장하고 장터로 모였다. 감리교 측 주도인물들은 장터에서 작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였다. 오후 1시경 오창섭과 김영옥이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터로 들어오자, 차봉철·김기현(金基鉉)·송경섭(宋景燮)·이홍근(李洪根) 등 감리교 측 사람들도 군중들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주도인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위대와 같이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와 함께 장터를 돌며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고,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만세시위를 펼쳤다. 만세운동 소식에 일본은 헌병과 춘천수비대(春川守備隊)까지 급파하여 시위를 무력으로 저지하였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차봉철과 서상우 등의 지휘 하에 수비대를 뚫고 헌병분견소(憲兵分遣所)로 나아갔다. 시위대의 저항이 계속되자 헌병들은 33명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강제로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이 때 현장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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