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근
申泰根1870. 9. 1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대구부 서문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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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70년 9월 12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지천면(技川面) 신동(新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한문교사였다. 3월 8일에 대구부(大邱府) 서문시장(西門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 한 만세운동은, 이를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지방의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다. 대구에서는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이 최초였다. 서문시장의 만세운동은 경북지역 독립선언서 배포 책임자인 이갑성(李甲成)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용상(李容祥)을 통해 대구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이만집(李萬集)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만집은 장날인 3월 8일 오후 3시에 서문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계성학교(啓星學校)·대구고보(大邱高普)·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성경학교(聖經學校)의 학생·교사들과 접촉하여 만세운동에 참여 할 것을 권유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8일 오후 3시에 이만집·김태련(金兌鍊)을 비롯한 기독교계 인사들과 각 학교 학생들이 서문시장에 모여들었다. 이만집과 김태련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려 하였으나, 감시 중이던 일제 경찰들이 뛰어들어 상황이 여의치 않자 급히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선창하였다. 이에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군중이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호응하였다. 이때 장을 보러 서문시장을 방문하였다가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보고 이에 감흥하여 함께 만세시위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장에 모인 군중 700~800여 명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서문시장을 출발하여, 본정(本町)·경정(京町)을 거쳐 동성정(東城町)(지금의 동성로)으로 행진하였다. 동성정에 도착하자, 일제 경찰과 일본군 보병 제80연대가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구타, 폭력을 행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였다. 이 곳에서 일제 군경에 의하여 붙잡혀, 이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이후 다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는데, 그 해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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