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환
申宗煥1890. 11. 20 ~ 1969. 8.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의성군 춘산면 만세운동 계획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0년 11월 20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춘산면(春山面) 금오동(金梧洞)에서 태어났다. 유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 당시 낮에는 농사를 짓는 한편, 저녁에는 서당(書堂)을 운영하며 유학을 가르쳤다. 4월 3일 의성군 춘산면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의성에서는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대구(大邱)에서 시위를 목격·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전달받았다. 한편, 서울이나 평양 등의 도시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3월 12일을 기점으로 하여 의성군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만세시위가 시작된 이래로, 4월 3일까지 거의 매일 시위가 일어났다. 거주하고 있던 금오동은 의성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시위 계획이 비교적 늦게 세워졌다. 1919년 4월 1일, 금오동의 여러 일을 의논하기 위해 동회(洞會)가 방오발(方五發)의 집에서 개최되면서 처음 시위 계획이 세워졌다. 이웃에 거주하는 신병섭(申炳燮)은 동회를 시위를 계획하기 위한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하여, 동회에 참석하였다. 신병섭은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후일에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3월 27일, 이웃한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화목시장(和睦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여 금오동에서의 만세시위 당위성을 밝히고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때 적극 동의하였다. 이웃 박수석(朴秀碩)까지 합세하여 함께 거사를 계획하기로 하였다. 3인은 4월 3일에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신병섭의 주도로 격문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신병섭은 유학적인 기반으로 활동했던 사람이었기에 전통적인 방식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격문은 주도자 3인의 명의로 죽음으로써 만세시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격문은 동네 주민 김태섭(金台燮)·이태성(李泰成)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이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일제 군경에게 알려지면서 4월 3일, 금오동에서 계획한 시위는 결국 일어나지 못하였다. 신병섭·박수석과 함께 사전에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