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운석
申運錫1839 ~ 1896. 8.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운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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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신안리(新安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39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이명은 신응천(申應天)·신청헌(申淸軒)이다. 성격은 곧고 결백하며, 고집이 있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고, 사소한 예의범절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하였다고 한다. 의병을 일으키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1896년 의병을 모아 약 300여 명 규모의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의병장이 되었다. 그 해 (음)3월 11일부터 영덕 의병부대와 함께 영덕군 남정면(南亭面)에 잠복하여 적과의 교전을 준비하였다. (음)4월 8일 관군 60여 명이 남쪽에서부터 영덕 쪽으로 기습해 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남정면 지경리(地境里)에서 매복하여 관군을 먼저 습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병대에 비해 관군의 무장이 철저하여 기회를 엿보고자 퇴각하였다. (음)4월 9일 관군 63명이 흥해(興海)에서 영덕으로 진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남정면 장사리(長沙里)에 잠입하여 관군을 기다렸다. 그러나 전력이 아직 관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다시 후퇴하여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음)4월 11일 장사리에서 남정면 원척리(元尺里)로 의병부대 주둔지를 옮겼다. 관군의 기습으로 의병 12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뒤이어 관군과 교전이 계속되었으나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원척리에서 후퇴하여 영덕의 남천숲(南川藪)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남천숲에서 부대를 정비하여 반격의 기회를 도모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의병부대를 해산하고 고향이었던 지품면 신안리로 돌아가서 후일을 도모하였다. 6월 29일 이천의 김하락(金河洛) 의병부대가 영덕에 도착하자, 7월 2일 연합하였다. 7월 13~14일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교전하였으나 크게 피해를 입었다. 이후 지품면 신양동으로 부대를 옮겨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여 지품면 속곡리로 피신하였으나, 결국 자수하여 붙잡혔다. 1896년 (음)8월 3일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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