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태
申相泰1889. 4. 1 ~ 1950. 12.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청년단
- · 천도교
- · 조선국권회복단
- · 신간회
- · 조선농인사
- · 국민대회준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9년 4월 1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약목면(若木面) 복성동(福星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호는 혜산(兮山)이다. 일찍이 칠곡군 약목에 있는 동락의숙(同樂義塾)에서 장지필(張志必) 선생의 가르침으로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깨우쳤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를 비롯하여 남형우(南亨祐)·이원식(李元植)·신백우(申伯雨)·김태희(金泰熙)·김동삼(金東三)·박중화(朴重華)·배천택(裵天澤) 등 80여 명이 비밀결사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였다. 그 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2년 대구은행에 근무하면서 천도교(天道敎) 대구지부의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대구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함께 근무하던 출납계 주임 이종암(李鍾岩)이 현금 1만 9천원을 인출하여 만주로 망명할 때 은신처를 제공하여 일제 경찰의 수사를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915년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 등이 조직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단원으로 가입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동지의 규합을 위해 노력하던 중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20년 봄 임시정부가 천도교의 대표적 인물 파견을 요청하자, 같은 해 4월 23일 천도교 중앙대종사(中央大宗司) 종법위원(宗法委員) 신숙(申肅)과 함께 상하이·만주 각처를 거쳐 안둥현(安東縣)에 도착하였다. 이후 국내에서 보내오는 군자금의 중계 및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가는 청장년의 연락과 안내책으로 활동하던 중 대구경찰서에서 밀파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겪었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허홍제(許弘濟)·조중규(曺重奎)·채충식(蔡忠植) 등의 칠곡지역 청년지사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7년 1월 농촌 개발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조선농인사(朝鮮農人社)를 조직하여 채충식(蔡忠植)·여운홍(呂運弘)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그 해 민족협동전선을 표방한 신간회(新幹會)가 창립되자 신간회 칠곡지회(漆谷支會) 간사로 선임된 것을 비롯하여 1929년 신간회 김천지구(金泉地區) 대표, 1930년 11월 9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 등을 역임하였다. 1928년 안희제(安熙濟)·이상협(李相協) 등이 창립한 중외일보(中外日報)의 주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1년 신간회 해산 반대투쟁으로 일시 구속되었다. 1945년 독립을 앞둔 시점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왜관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광복 3일 전 병 보석으로 풀려났다. 광복 후 1945년 9월 7일 송진우(宋鎭禹) 등이 민족주의세력을 합쳐 정당을 결성하기 위해 조직한 국민대회준비회(國民大會準備會)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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