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섭
朴忠涉1888 ~ 1957.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 · 공립협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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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5)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서문밖(西門外) 숙정동(肅井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미주 지역에서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에 참여하였다.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 등이 민족운동단체로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자, 샌프란시스코지방회(일명 桑港地方會)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6월에는 공립협회 리버사이드지방회(일명 河邊地方會)로 이전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08년 11월에는 핸포드(Hanford)로 이주하여 공립협회 핸포드지방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09년 2월 1일 공립협회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가 통합하여 국민회(國民會)를 창립하자 국민회 레드랜드(紫地, Redlands)지방회와 핸포드지방회에서 활동하였다. 한편 태동실업주식회사(泰東實業株式會社) 사무원으로 일하며 러시아 연해주에 독립군기지를 개척 사업에 주력하였다. 1910년 2월 10일 국민회가 북미 대동보국회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로 개편되었다. 1910년 흥업실업주식회사에서 회계로 활동하다가 1911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에 재무로 선임되어 지방회의 재정마련과 독립운동 자금의 수합에 앞장섰다. 1914년에는 서기, 1916년에는 구제원, 1917년에는 재무, 1919년에는 총무로 선임되어 회장 허승원(許承元)·부회장 최재덕(崔在悳)·서기 김태진(金泰鎭)·재무 구정섭(具正涉)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8년 1월 8일 로스앤젤레스지방회(일명 羅城地方會)에서는 특별회를 개최하여 대한인국민회창립기념준비위원과 3·1운동경축준비위원 선정한 뒤, 김배혁(金培赫)·황덕수·이영수 등과 함께 재정수합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단원 윤봉길(尹奉吉)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 김구(金九)와 의논한 후 홍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투탄 의거를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접한 대한인국민회는 임시정부와 재중국 독립운동가를 후원하고자 상해사변임시위원부를 조직하고, 로스앤젤레스 지역 독립금 수합 담당자로 박재형(朴在炯)과 함께 임명되어 활동하게 하였다. 미주 한인 2세대들이 성장하면서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독립의식이 희박해지는 것을 염려한 한인 지도자들은 삼일국어학교를 영구적으로 유지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황사용(黃士容)·최능익·임성택·김성권(金聲權) 등과 함께 9인 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40년 딜라노(Delano)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현신성 등과 함께 2월에는 대한인국민회 창립 31주년 기념식, 10월 26일에는 한국광복군 창설 축하식을 주관하며 딜라노 거주 한인들의 독립의식을 강화시켰다. 1941~1942년에는 지방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3·1운동 기념식, 8월 29일 국치기념식을 주관하는 등 항일의식 고취와 독립운동 자금 수합에 앞장섰다. 1944년에는 다시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한인사회를 이끌어갔다. 1910~1945년 삼일국어학교 후원금, 국민의무금, 독립의연금과 독립금, 한국광복군 후원금 등 505원 등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후원하며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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