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식
申鼎植1869. 9. 12 ~ 1942. 4.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청주군 미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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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6) 1869년 9월 12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남일면(南一面) 방서리(方西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30일에서 31일까지 전개된 청주군 미원면(米院面) 미원장터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미원면 미원장터 만세시위는 청주군 내에서 전개된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으로 신경구(申敬求)·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30일 오전 미원장터 인근에 소재한 김태복(金泰復)의 집에서 만세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오후 2시 경부터 미원장터의 사거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이들의 호소에 공감하여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함에 곧바로 미원면 헌병주재소의 헌병 8명이 출동하여 시위대에게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시위대와 함께 더욱 격렬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며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이 모습에 호응한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에 일제 헌병들은 만세 시위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시위의 중심 인물 신경구를 강제로 연행하여 주재소에 가두었다. 일제 헌병의 탄압에 분노하여 이용실의 지휘를 받아 1,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헌병주재소로 쫓아가서 신경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신경구를 석방 인도하라”라는 만세 시위대의 요구에 주재소장이 불응하자 “주재소를 파괴하라”, “주재소장을 죽여라”라고 절규하는 이용실의 외침을 신호로 이용실·윤인보(尹仁甫)·이성호(李聖浩)·이서구(李瑞九)·서정렬(徐正烈)·신성휴(申聖休)·성규원(成奎垣) 등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기물을 파괴하고, 주재소장과 일제 헌병을 구타하였다. 시위가 갈수록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은 청주경찰서의 지원 병력을 미원면으로 급파하였다. 청주의 헌병들은 미원면에 도착하자마자, 미원면의 헌병들과 함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시위대 중 1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벌어지면서 시위대가 해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신학구·서정렬 등과 함께 시위대의 해산을 만류하면서 곤봉으로 일제 헌병에 대항하였으나, 결국 현장에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이후 일제의 조사 과정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징역 10월을 받았다. 다시 불복하여 상고했으나 8월 16일 고등법원부에서 최종적으로 상고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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