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철
金奎喆1881. 1. 5 ~ 1929. 6.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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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1년 1월 5일 충청북도 청풍군(淸風郡) 근남면(近南面) 만곡(晩谷)에서 양반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제천군 수산면 도전리로 이주하였다. 궁내부(宮內府) 주사(主事)를 지낸 바 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케 하였으며,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하였다. 이에 단양에서 이명상(李明相) 등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의병부대를 구성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었다 한다. 이강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충북 단양·청풍·충주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움직임이 날렵하다 하여 비장(飛將)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08년 6월 청풍에서 일본군 수비대에게 한 차례 체포된 적이 있으나, 제천으로 호송되던 도중 탈출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죽령(竹嶺) 지역에서 400여 명을 인솔하고 일본군과 다섯 차례 접전하여, 네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11월 단양전투를 치르던 중에 일본군에 체포되어 대구감옥에 수감되었으나 탈옥에 성공하였다. 1909년 승지(承旨)를 지낸 김규흥(金圭興)과 이범구(李範九)·권용일(權用佾) 등과 함께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보내는 고종의 「청병서(請兵書)」라고 하는 밀서를 가지고 가던 중 인천에서 체포되었다. 이 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1910년 이범규(李範圭) 등과 의친왕(義親王)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시키려 하였으나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에서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1922년에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려고 출국하던 중 인천에서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겪었다. 이후 의병장 이강년의 의병 활동 기록인 『창의일록(倡義日錄)』을 간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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