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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순

申元淳

1890. 2. 7 ~ 196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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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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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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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합천군 묘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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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2월 7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묘산면(妙山面) 관기리(館基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신경팔(申敬八)이 있다. 1919년 3월 22일 합천군 묘산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묘산면 만세 시위는 합천군에서 일어났던 여러 시위들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군내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묘산면에도 전해지면서, 여기에 자극을 받고 거사를 계획하였다. 윤씨 집성촌인 팔심리(八尋里)에서 윤병석(尹炳奭)·윤병은(尹炳殷)·윤병양(尹炳陽)과 함께 주도적으로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거사일은 3월 22일로 정하고,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등 도구를 제작하는 한편, 도옥리(陶沃里) 등 묘산면 관내 각 동리에 연락하는 역할을 조율하였다. 3월 22일 팔심리 주민들과 함께 묘산면 읍내로 나아갔고, 도옥리 등 연락을 받은 각 동리 주민들이 합세하였다. 오전 11시경 모인 인원은 대략 100여 명을 헤아렸고,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각 마을의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후 군중들을 이끌고 면사무소로 갔다. 이 과정에서 성경술(成敬戌)과 함께 일제 군경의 출동을 지연시키고자 전신주를 절단하였다. 만세 군중을 지휘하여 면사무소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뒤늦게 시위 소식을 접한 일본군 헌병대와 주재소 경찰들이 출동하였다. 일제 군경은 실탄사격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윤병하(尹炳夏)·윤병교(尹炳喬)가 사망하였고, 결국 시위대는 잠시 해산하였다. 그러나 사상자 발생에 분노한 묘산면 군중들이 다음날인 3월 23일에 다시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3월 24일까지 이어졌다. 이후 일제 군경에 의한 검거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2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7월 31일 징역 1년 6월로 감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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