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호
申鑅浩1902. 6. 25 ~ 1947. 2.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청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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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2년 6월 25일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현 청주시) 가덕면(加德面) 인차리(仁次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신영호(申榮浩)가 있다. 서울의 사립 중앙학교(中央學校)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청주로 내려와 3월 9일 충북 지방 최초의 학생 만세운동 계획을 주도하였다. 청주에서는 충북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일찍 독립 만세 운동의 움직임이 있었다.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한 다음 날인 3월 2일 청주로 「독립선언서」 286장이 전달된 것이 확인되고, 3월 7일에는 청주의 우시장(牛市場)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2일 뒤인 3월 9일 청주농업학교(淸州農業學校) 학생들과 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일제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이것은 충북 최초의 학생 만세 운동 계획이었다. 서울의 중앙학교에 재학하던 중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1일부터 4일까지 서울 학생들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결의하였다. 귀향하는 도중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한국의 독립 취지를 기재한 「우리(我) 2천만 동포에게 경고함」이라는 경고문을 입수하여 청주에 도착했다. 3월 9일 아침 청주농업학교(淸州農業學校) 기숙사로 찾아가서 이 학교에 재학 중인 친구 오석영(吳錫永)·이수천(李壽千)·이요습(李要習)·서상경(徐相庚)·양재성(湯在城)·박승하(朴勝夏) 등에게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 상황을 상세하게 전달하였다. “서울에서는 중학 정도 이상의 학교는 남녀를 불문하고 휴업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열광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고, 수원에서도 농림학교(農林學校) 학생들이 서울과 마찬가지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으니, 청주에서도 만세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리고 수원에서 입수한 「아(我) 2천만 동포에게 경고함」의 경고문을 전달하여 숙독하라고 하였다. 청주농업학교 학생들이 경고문을 돌려 읽고 서로 협의한 후 제안에 동의하자, 이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배포할 경고문을 인쇄하기로 하였다. 이날 바로 이들과 함께 청주 청수정(淸水町) 소재 김현구(金顯九)의 집으로 가서 등사판을 사용하여 경고문의 인쇄에 착수했는데, 박승하로부터 만세 운동 계획에 대해 이야기 듣고 동의한 임창수(林昌洙)·이철우(李喆雨)·신태동(申泰東)이 김현구의 집으로 찾아와서 동지로 합류하였다. 이후 이들과 함께 300여 장의 경고문을 등사하여 준비하였으나, 만세 시위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동일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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