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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경

辛泳慶

1889. 8. 23 ~ 1937.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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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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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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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칠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889년 8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칠원면(漆原面) 용산리(龍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후 함안군 칠원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함안군 칠원면 만세운동은 3월 9일 칠북면(漆北面) 이령리(二靈里) 연개장터 시위를 시작으로 4월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함안 지역 만세운동을 대표하는 운동이였다. 구성리(龜城里) 교회 손종일(孫鐘一)과 박순익(朴順益), 그리고 지역 유림인 박경천(朴敬天)·황영환(黃英煥)·엄주신(嚴柱信)·윤사문(尹士文)·김상률(金相律) 등이 모여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는데, 이때 참여하였다. 용산리의 가장정(佳藏亭)에 모여 기독교계와 유림의 협력 하에 거사를 계획하였다. 거사일을 칠원 장날인 3월 24일 구성리 장터로 정하였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제작,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 등 역할 분담을 하였다. 이때 준비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집이 인근에 있어 밥을 지어서 가장정까지 운반하여 거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였다. 당시 19세였던 친동생 신영수(辛英秀)도 준비 모임에 참여하여 연락책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4일 구성리 장터에서 손종일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모여든 군중 1천여 명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나누어주는 한편으로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주재소 경찰관들이 출동하여 착검한 총을 겨누며 해산을 종용했지만, 굴하지 않고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며 주재소로 전진하려고 하였다. 결국 동생 신영수, 그리고 주도자 중 한 명인 황영환과 함께 붙잡혀 주재소에 갇혔다. 밤 9시경에 박순익 등이 300명의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일본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강제 해산당하고, 추가로 윤사문이 체포되었다. 4월 3일 손종일 등이 주도한 2차 만세 시위는 더 큰 규모로 전개되었고,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였다. 몽둥이를 들고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고, 투석전을 전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시위 형태를 보였으나 일본군 수비대까지 출동한 강제 진압으로 결국 손중일을 비롯한 시위 주도자 대부분이 체포되었다. 이후 다른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모진 고문과 조사를 거쳐서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 장기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심한 고문을 받아서 다른 이들 보다 한 달 늦게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8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부산감옥 마산분감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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