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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우

辛岩宇

1901. 4. 7 ~ 1947.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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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암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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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昌寧)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결사단(決死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창녕군 영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1년 4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영산면(靈山面) 성내리(城內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신암우(辛岩于)·신영락(辛泳洛) 등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영산면에서 결성된 결사단(決死團)에 참여하였고 3월 13일 영산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오후 2시쯤 구중회(具中會)·장진수(張振秀)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산면 남산(南山)에 모였다. 이들과 함께 「결사단원 맹세서」를 작성하고 여기에 각자 서명하여 결사단(決死團)에 참여하였다. 이후 전날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흔들고, 징, 북을 두드리면서 조선독립만세와 전진가(前進歌)를 부르며 영산면을 행진하였다. 일단 시위대와 함께 오후 6시경 해산하였다. 창녕경찰서에서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경찰을 급파해 몇몇 주도 인물들을 체포하였다. 이에 2시간 뒤인 오후 8시경 남경명(南景明)·장정수(張正秀) 등이 다시 남산에 모여서 태극기를 흔들고, 많은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영산면 읍내를 행진하였다. 2차 시위 참가 여부는 불확실하다. 결사단 조직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에 검사가 항소를 신청하여, 그 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이 취소되고 징역 8월을 다시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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