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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영

辛錫永

1881. 2. 17 ~ 1960.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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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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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楊平)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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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양평군 강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1년 2월 17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강상면(江上面) 송학리(松鶴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산(靈山)이고, 자(字)는 여노(汝老)이다. 한학을 공부하였고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29일 양평군 강상면 교평리(交坪里)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1일 서울에서 거행된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과 뒤이은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는데, 양평에서는 서울의 운동과 뜻을 같이하여 3월 10일 서종면(西宗面)을 시작으로 3월 23일과 24일에는 청운면(靑雲面)·갈산면(葛山面)에서 수백여 명의 군중들이 궐기하여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친 바 있었다. 3월 29일, 갈산면 양근리(楊根里)에 있는 시장에 가기 위해 교평리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조선의 독립이 세계 각국에서 승인되었으며, 일본 역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이에 나루터에 놓여 있던 태극기를 들고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 100여 명 역시 따라서 만세를 외쳤다. 이에 양평에서 거듭된 만세운동을 경계하고 있던 일제 경찰이 강 건너에서 총을 쏘며 나루터를 습격하여 군중을 해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붙잡혀, 치안을 소란스럽게 하였다는 이유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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