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신상희

申相熙

1892. 8. 7 ~ 1962. 9.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상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영동(永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영동군 매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8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 옥전리(玉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에서 6일까지 전개된 영동군 매곡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영동군 매곡면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참여한 후 자신의 고장에서도 만세 운동을 일으킬 생각으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안광득(安光得)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귀향한 안광득의 연락을 받고 안준(安準)·김용선(金容善)·안병문(安秉文)과 함께 안녕(安寧)마을에서 열린 비밀 회합에 참여하였다. 이 자리에서 서울의 독립운동 상황과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파악하고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다. 그후 장복철(張復哲)·임봉춘(林奉春)·남도학(南道學) 등이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들과 함께 구체적인 만세시위의 준비로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 400여 장을 제작하면서 첫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4월 2일로 결정하였다. 4월 2일은 매곡면의 밤나무 묘목장에 주민동원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할 계획이었다. 4월 2일 오전 밤나무 묘목장에 모인 100여 명의 주민들 앞에서 안광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배포한 후, 안준이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함에 주민들이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안광득·안준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노천리(老川里)의 면사무소로 가서 독립의 이유를 역설하여 면장과 면직원들까지 ‘조선독립만세’의 구호를 외치게 하는 등 한동안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 날이 인근 황간읍(黃澗邑)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더욱 확대된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에 모인 많은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오후 5시경 황간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황간장은 만세 시위를 예상한 일제 경찰에 의해 이미 철시되었으므로 자진 해산하였다. 4월 3일에는 전날의 만세운동 소식이 매곡면 전체로 알려져 옥전리·노천리(老川里)를 비롯한 매곡면의 여러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하여 곳곳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4월 4일에는 더욱 대규모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여 오전 11시경부터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에는 매곡면 일대에서 800여 명의 주민이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고, 면장 이하 면사무소의 직원들과 거주 일본인까지 만세 시위에 참여시켰다. 이처럼 매곡면의 만세시위가 갈수록 확대되어 가자, 일제는 추풍령(秋風嶺)의 헌병분견대원 및 수비대를 매곡면으로 급파하였다. 일제 헌병들의 만세 시위 탄압 과정에서 안광득·임진규(林珍圭)·남도학이 체포되어 추풍령 헌병분견소로 압송되었다. 이들의 구출을 위해 안준·장복철·김용선 등과 해산하지 않고 남아있던 시위대 150여 명을 지휘하여 추풍령의 헌병분견소로 달려가서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구출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일제 헌병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여 헌병분견소의 창고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뒤 4월 5일 새벽 5시경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에도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300여 명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독립기’를 앞세우고 추풍령 헌병분견소로 갔다. 오전 11시경부터 체포된 안광득·임진규·남도학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여 해산시키면서 만세 시위의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안준·안병문·장복철·김용선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헌병의 가혹한 조사 과정 이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1개월 줄어든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다시 이에 불복하여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7월 5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