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금
申分今1886. 5. 21 ~ 1958. 10.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1919년 영덕군 지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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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86년 5월 2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원전동(院前洞)에서 태어났다. 김태을(金太乙)과 결혼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북장로파 기독교 신자였다. 남편 김태을이 3월 18일 만세시위 와중에 붙잡혀 구금당하자 3월 19일 영덕군 지품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 만세운동은 영덕군에서도 일어났다. 3월 초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북장로교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였고,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영덕으로 돌아왔다. 김세영은 3월 12일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에게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운동의 배경과 현황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영덕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김세영은 영덕의 기독교 신도들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편 김태을도 만세운동 계획 소식을 전달받았다. 남편 김태을을 통하여 각지의 만세운동 소식과 영덕군 만세운동 계획을 들었다. 김태을은 다른 기독교인들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3월 18일에 영덕면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3월 19일 지품면 만세시위에서 남편 주명우(朱明宇)가 검거된 윤악이(尹岳伊)와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윤악이에게 3월 24일 지품면 원전동(院前洞)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수락하였다. 만세시위 당일 24일 원전동 시장에서 윤악이는 군중에게 “우리는 여자인데도 한국독립을 희망하여 독립만세를 외친다”라고 연설하였고, 이에 호응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장날 시장은 일제에 의한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지 못하고 붙잡혔다. 1919년 4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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